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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화폐 트라우마 : 달러가 이길까 금이 이길까Memories/책 영화 리뷰 2020. 5. 1. 23:48
화폐 트라우마
다니엘 D. 액케르트 저
인류 문명이 들어선 이래 수만 년간 인간은 화폐를 사용해왔다. 화폐는 인간이 교역하게 하며, 소유한 가치를 저장하게 해 주며 나아가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화폐를 알지 못하면 거시적인 돈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
다니엘 D. 액케르트의 저서인 화폐 트라우마는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4대 자산 통화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예측을 제시한다. 저자의 훌륭한 거시적 통찰력에 조금 살을 붙여 풀어내 보고자 한다.
달러
미국의 통화인 달러는 전세계 기축통화(Key Currency)로 쓰인다. 즉, 일본은 엔화를 쓰고 한국은 원화를 쓰지만 일본과 한국이 교역할 때에는 각국 통화를 쓰는 데신 달러로 교역을 하는 것이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것은 미국에 엄청난 힘을 부여한다. 모든 국가들은 무역을 하기 위해 일정량의 달러를 보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97년 외환위기도 충분한 달러를 보유하지 못해 발생했다.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서 자국을 위해 사용해도, 다른 나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찍어낸 달러를 구입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달러의 트라우마: 디플레이션의 공포, 달러의 전략: 인플레이션 유도
미국은 1929년부터 1939년까지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기간동안 무시무시한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디플레이션이란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가 감소하여 그에 대한 가격도 하락하는 것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디플레이션은 좋은 일처럼 들릴 수 있다. 내가 소비하고자 하는 물건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면 결국 경제는 침체한다. 오늘 1000달러인 애플 핸드폰이 다음 달에 900달러로 내려갈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오늘 핸드폰을 구매하겠는가? 당연히 소비를 미룰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투자하여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없으므로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가계가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은 디플레이션을 막고 (적당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트럼프가 중앙은행에(FED) 저금리를 책정하고 돈을 더 찍어내자고 임기 내내 요구해온 것도 달러 가치를 하락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양적 완화" (Quantitative Easing, QE)를 쉽게 풀어 말하면, 돈을 찍어내 가계와 기업에 공급하여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겠다는 정책이다. 은행이 달러를 새로 찍어내서 내보내면 기존에 시장에 나와있던 달러의 가치는 하락하므로 자연히 그 달러로 살 수 있는 물건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러나 미국이 이렇게 달러를 마구 찍어내면, 달러를 가지고 있던 다른 나라들은 손해를 보는 것이다. 가령 한국이 1억 달러어치 석유를 사려고 달러를 보유해두고 있었는데, 오늘 미국이 돈을 찍어내 1억달러를 산유국에 들고 간다면 산유국은 석유 가격을 올릴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있는데 매수자들의 돈이 늘어난다면 많이 주는 사람에게 파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제까지 1억 달러어치 석유를 살 수 있었으나 오늘 석유 가격이 오르면서 이제 같은 돈으로 9천 달러어치만큼의 석유밖에 살 수 없다. 다른 나라들은 달러 가치가 내려가면서 손해를 보지만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찍어내 석유를 샀다. 이것이 기축통화의 위상이다.
달러는 언제까지 기축통화로 남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써의 권력을 남용해 달러를 무제한으로 마구 찍어내 사용한다면, 다른 국가들은 이를 당하고만 있을까?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단으로 치달아, 자본주의 패러다임과 달러가 함께 몰락할지도 모른다. 국제 기구가 달러 대신 세계 공동 화폐를 채택하자고 건의한다면? 이미 기축통화국으로써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미국은 절대 그것만은 막고 싶을 것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달러의 힘을 유지해왔다. 1985년 일본과 맺은 플라자 합의가 그랬고, 앞으로의 희생양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달러가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 미국의 달러화, 유럽의 유로화, 중국의 위안화의 3극 통화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이미 2018년 유럽과 중국은 석유 구매시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미국에서 80년대 인터넷 혁명, 2000년대 애플을 위시한 IT 혁명과 같은 새로운 혁신이 계속되는 한 달러는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위안
중국은 단일 화폐가 자주 바뀌었고 이에 대한 기억으로 화폐 혼란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공산당 독재 체제인 중국은 화폐 가치를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통제하고 있다.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저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통제적으로 자금을 유입하고 있고, 그 부작용으로 부동산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위안의 전략: 위안화의 저평가, 달러 통제, 금융 실험
전세계가 일본이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경쟁력을 잃고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다. 제조업 국가에게 있어 낮은 환율은 강력한 무기다. 위안화가 저평가가 유지되어야 중국 상품이 다른 국가들 대비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소비자는 똑같은 제품이라면 조금이라도 싼 상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에 따라 위안화의 저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자금을 유입하고 있으며 자국 수출업자들의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인 이상 언제까지나 환율조작을 꾀할 수는 없을 것이며, 다른 나라의 견제가 심해질 때 조금씩 상향 조정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트럼프는 이미 2019년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으며 재선 후 다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시 무역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중국은 또한 위안화를 준비통화로 등극시키기 위하여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주무르고자 시도하고 있다. 미국 국채를 지속적으로 구입해 달러화에 대한 영향력을 늘리는 것이 그렇다. 또한 상하이를 뉴욕 월스트리트에 버금가는 금융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이미 상하이 증시는 시가총액으로는 세계 2위이다. 중국은 홍콩을 실험대로 삼아 위안화 개방 단계를 결정할 것이다.
위안의 미래
현재까지는 타 국가가 달러화대비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보유하고 있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다. 하지만 2030년 즈음 중국이 미국의 위상을 해체한다면 세계 모든 국가들이 중국과 지금보다 더 많이 무역을 할 것이고, 중국은 어마어마한 소비 국가로 탄생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위안은 달러, 유로와 더불어 핵심적인 준비통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밝은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안이 조금이라도 절상되어, 80년대 일본처럼 무시무시한 버블이 생겨난다면? (당시 도쿄 땅 전체로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버블이 순식간에 꺼져버린다면? 이는 경제 파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또한 현재까지 일인자가 된 국가들은민주주의,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정치적으로 공산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중국의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적이며,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확산되려면 필연적으로 이 시스템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것이다.
유로화
유로의 트라우마
유로화는 유럽 대륙 내에서 쓰이는 단일 화폐이지만, 유럽을 구성한 나라들은 단일 국가가 아니다. 외적으로는 단합을 외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 견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유럽의 트라우마이며, 화폐 정책과 경제 정책이 한 배를 탈 수 없음이 두 번째 트라우마이다.
유로의 전략: 위기와 갈등, 긴축과 부양의 딜레마
유로의 위기는 유럽 국가들의 경제 위기에서 온다. 그리스에서 처음 촉발된 위기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번졌고 이 불이 유로존의 리더 격인 독일과 프랑스까지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기에 이르렀다. 노령화로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유로존의 근본적인 경제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독일 정부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발생한 과도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를 기억하고 있기에, 늘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위기에서 독일 정부는 늘 긴축정책을 펴는 편을 택하며 유로존 전체의 금융 건전화를 꾀한다. 하지만 독일 이외의 많은 국가들은 긴축재정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유로존 최고의 부국인 독일이 위기로 인한 보상금을 많이 지불하므로 현상태를 관망할 뿐이다.
유로의 미래
유로의 문제는 화폐는 통일하였으나 경제 시스템은 통일되지 않은 채에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마르크화에 비해 저평가된 유로화를 사용함으로써 수출국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점하여 나날이 경제가 발전해왔지만, 그리스 스페인 등 국가들은 자국 화폐 대비 절상된 유로화의 사용으로 나날이 경제가 어려워져 가고 있다. 독일이 유로존에 속해 있는 한 PIIGS 국가들은 더 큰 불황에 빠질 수 있고 결국 파산할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독일의 탈퇴를 종용할 수만도 없는 것이, 독일이 탈퇴하면 자국 화폐 가치 절하로 수출에서 이익은 보겠지만, 과거 세계 대전을 2번이나 일으킨 독일이 유로존을 탈퇴하여 다른 선진국들과 마르크 블록을 형성하는 것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해결책으로 유로존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유럽 경제정부를 탄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유로존은 해체될 것이다.
유럽 경제는 많은 부분이 중국과 미국 경제에 종속되어 있다. 중국과 미국 경제가 좋아져야 유로존도 함께 경제 상승세를 탈 수 있다. 중국 역시 최대 수출지역이 유로존이므로 유럽이 삐걱대면 중국의 이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유로는 공격적 화폐보다 방어적 화폐로 볼수 있다. 달러와 위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평화지대의 화폐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
금
달러가 기축 통화로써의 지위가 흔들릴 때마다 금은 가장 유일한 가치 보존 수단으로써 빛을 발한다. 선진국은 이미 많은 양의 금을 외화 보유고로 보관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같은 신흥국도 금 보유량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 금 본위제를 채택함으로써 금은 그 자체로 기축 통화로써의 역할을 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꾸어 주었다. 달러가 가치를 잃는다면 세계 각국이 교역 화폐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택지는 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금은 달러화와 함께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며,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으레 가격이 오른다. 금속과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호주 달러, 브라질 레알, 인도네시아 루피아 역시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여주는 자산으로 으레 취급된다.
원화
위의 통화들에 대비해 한국의 원화는 위험자산군에 속한다. 경제 위기가 오면 개인, 기업, 국가는 지급 여력을 높이기 위하여 기축통화를 최대한 확보하려 하고, 기축 통화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간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위험 자산인 원화뿐 아니라 안전 자산인 기축통화를 포트폴리오에 포함시켜야 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다. 중국 경제가 호황이면 한국도 어부지리를 얻고,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한국도 어려워진다. 이는 위안화와 원화 간 동조화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가까운 미래에 미국과 중국 사이 2차 무역 전쟁이 예상되는 현재, 원화의 보유 비중을 줄이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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